칩워, 책 소개, 크리스 밀러, 리뷰, 추천평

제목: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저자: 크리스 밀러
번역: 노정태
출판: 부키

 

목차

★ 1. 칩워, 책 소개
★ 2. 크리스 밀러 저자
★ 3. 부키 리뷰
★ 4. 추천평

 

 

 

 

칩워, 책 소개

반도체의 모든 것을 정밀 회로처럼 집약한 아찔하고 우아한 기념비적 역사 논픽션입니다. 불과 70여 년 전만 해도 세상에 없던 제품이 오늘날 세계 80억 인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가전기기부터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 국가 안보, 산업과 경제 전반을 좌우하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칩, 반도체다. 석유를 빼놓고 20세기를 이해할 수 없듯, 반도체를 제외하고 21세기를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크리스 밀러의 '칩 워'는 반도체 산업의 태동부터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패권 대결, 한국과 대만, 일본, 실리콘밸리의 치열한 기술 경쟁과 미래 전략까지, 반도체 산업의 70년 역사를 담아낸 기념비적 논픽션 역사서입니다. 반도체는 현대 디지털 기술의 근간을 이루지만, 그런 칩을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나노미터 단위의 기술력과 장비를 갖추려면 장기간의 집중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칩 워'는 효율과 집중을 추구한 결과 반도체 공급망이 동아시아에 자리 잡는 과정과 산업의 선구자들을 추적합니다. 저자는 산업과 기술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풍부한 인터뷰를 결합해 21세기 반도체 산업의 조종간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와 정치 질서마저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오늘날 지정학적 경쟁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전략적인 싸움이 벌어지는 현황을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폭넓은 대중에게 실리콘 시대를 이해시킬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칩 워』”라는 '뉴욕타임스'의 극찬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이 책은 반도체 산업의 기초와 역사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 칩을 둘러싼 국제 경쟁과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래가 궁금한 경제인과 투자자, 앞으로 펼쳐질 기술 경쟁과 21세기 지정학의 향배를 조망하려는 모두에게 압도적인 흥미와 지적 쾌감, 풍부하고 깊은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크리스 밀러 (Chris Miller) 저자

크리스 밀러는 터프츠대학교 국제관계학 대학인 플레처 스쿨에서 국제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미국기업연구소에서 진 커크패트릭 방문 펠로, 포린폴리시연구소에서 유라시아 연구 디렉터로 활동 중입니다. 저서로 왜 소련이 중국처럼 공산당이 통제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몰락했는지를 다룬 《푸티노믹스: 되살아난 러시아의 권력과 돈 Putinomics: Power and Money in Resurgent Russia》, 2000년대 초 러시아에서 나타난 국가 자본주의를 탐구한 《소비에트 경제를 구하기 위한 분투 The Struggle to Save the Soviet Economy》, 차르가 다스리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왜 러시아는 꾸준히 아시아를 지정학적으로 넘보고 있는지 그 의문을 풀기 위한 책 《우리가 주인이 될 것이다: 이반 대제부터 푸틴까지 러시아 동진의 역사 We Shall Be Masters: Russian Pivots to East Asia from Peter the Great to Putin》 등이 있습니다. 예일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부키 리뷰

기술과 산업은 물론 정치, 군사까지 얽힌 21세기 논픽션 스릴러입니다!

반도체 및 미중 반도체 전쟁 관련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다른 책과 궤를 달리합니다. 첫째, '칩 워'는 반도체 전문가가 아니라 국제정치 전공자가 썼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반도체를 둘러싼 현재의 복잡한 세계 상황을 단순히 기술 및 산업 측면에서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적 측면까지 포괄해 종합적으로 다룹니다. 그것도 철저히 미국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현재 반도체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속내를 정직하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둘째, '칩 워'는 저자가 미국과 유럽의 도서관은 물론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문서보관소의 다양한 문헌을 섭렵하고 국내외 반도체 업계, 학계, 정부 주요 인사 100여 명 이상을 인터뷰해서 쓴 책으로 반도체 관련 심층 리포트라 할 만하지만 독자들에게 '칩 워'는 스릴러물처럼 읽힐 정도로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서평 담당자가 “이 책은 논픽션 스릴러입니다. 영화 '차이나 신드롬'이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긴박감 넘칩니다”라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닙니다. 이 책 출간 후 32주 연속 국제경제 분야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마도 이런 요인 때문일 것입니다.

군사적 필요성, 즉 전쟁 대비가 반도체 기술 탄생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인 반도체라는 물건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식으로 발전해 왔으며, 오늘날 왜 이렇게 모든 나라가 아우성을 칠 정도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요. 반도체 그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습니다. 전기가 흐르는 물질을 도체, 전기가 흐르지 않는 물질을 부도체라고 부르는데, 실리콘과 게르마늄 등 몇몇 원소는 특정 조건에 따라 전기가 흐르기도 하고 흐르지도 않기도 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이 특성을 활용한 물건에 ‘반도체(semiconducto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반도체는 사실 초기에 군사 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미사일을 날리고, 폭탄을 떨어뜨리고, 비행기를 개발하는 등 현대의 모든 군사 작전과 업무에는 대단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각국은 이러한 계산의 수요를 기계식 계산기를 통해 충당해 왔습니다. 톱니바퀴와 도르래 등으로 이루어진 계산기에 숫자를 입력하고 손으로 돌리면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계식 계산기는 느렸고 고장이 잦았으며 하나의 기계가 미리 설정된 한 종류의 계산밖에 처리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전자식 계산기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전류가 흐르면 1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0이라는 신호를 부여합니다. 계산해야 할 모든 숫자를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으로 바꿉니다. 그러면 0과 1의 신호만으로 모든 계산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튜링 머신’의 작동 원리입니다. 이 발상은 성공적이었습니다. 1943년, 미국은 초대형 전자계산기 에니악을 만들었습니다. 1만 8천 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에니악은 초당 수백 개의 곱셈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 어떤 인간 계산원보다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문제는 에니악과 같은 전자식 계산기에 들어가는 ‘스위치’의 속성이었습니다. 어른 주먹 크기의 진공관은 너무 크고 수명도 짧았습니다. 들어가는 전력도 컸기 때문에, 커다란 회의실을 가득 채우는 에니악은 가동할 때마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습니다. 평균적으로 이틀에 한 번꼴로 고장 나는 진공관 역시 골칫거리였다. 미국은 새로운 종류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반도체가 그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성 물질을 이용해 스위치를 만들면 진공관처럼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 크기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스포이드로 화학 물질을 떨어뜨려 만들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진공관에 비해 매우 작았지만, 미국의 천재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모든 반도체 소자를 단일한 기판 위에 구성하는 이른바 ‘집적회로’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미국의 항공 우주 분야는 반도체, 구체적으로 집적회로의 힘으로 우주를 날았습니다. 진공관 컴퓨터로 컨트롤하는 우주선에 사람을 싣고 달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폴로 계획은 창립 후 늘 경영 위기를 겪던 페어차일드반도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미국, 일본을 버리고 한국을 대항마로 키우기 시작하다

하지만 어떤 물건이 본래 목적에만 쓰이는 법은 없습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부차적으로 쓰이게 된 것이 오히려 더 크고 더 강력한 시장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반도체는 그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당초 미국은 반도체라는 첨단 기술을 통해 냉전 시대에 군사 우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쇼클리가 진공관을 트랜지스터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급성장 중인 전자 산업 분야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출사표를 던지고, 쇼클리에게서 독립한 노이스가 페어차일드에서 집적회로 즉 반도체를 만들어 내어 미군 및 방위 산업체에 납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자 산업으로 그 활용처를 넓히면서 세상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가 탄생하고, 인터넷이 탄생하고, 무선 통신이 탄생하는 등 언제 어디서나 연결 가능한 세상이 열리면서 세상의 거의 모든 기계 장치 종류에는 반도체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반도체라는, 그 누구도 지배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열리자, 일본 기업들이 미친 듯이 뛰어들었습니다. 1970년대 당시 일본은 트랜지스터 기술 도입으로 전자 산업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본에 반도체는 꼭 확보해야 할 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도체 업계의 거물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당시 최초의 반도체 해외 생산 기지를 물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반도체 공생 관계가 작동하게끔 하기 위해 일본의 경영자들은 헌신적으로 발벗고 나섰습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최초의 반도체 해외 생산 기지를 물색하고 있었고 일본에 공장을 열기로 했지만, 넘어야 할 규제의 벽이 매우 높았습니다. 소니의 모리타는 이윤의 일부를 넘겨받는 대가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도움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경영진에게 일본에 몰래 방문할 것, 가짜 이름으로 호텔을 예약할 것, 호텔 방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모리타는 그 호텔에 은밀하게 찾아가 합작 투자를 제안했습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일본에서 칩을 생산하고, 소니는 관료들을 상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리타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경영진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뒤를 봐주겠소.” 텍사스 사람들은 소니가 “도둑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에는 어느 정도의 경탄이 담겨 있었습니다.(122-123쪽) 그 이후 일본 기업이 시장을 틀어쥐자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의회와 펜타곤을 오가며 로비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자유 시장에 대한 신념은 잠시 접어둔 채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컴퓨터 칩이나 포테이토 칩이나 뭐가 다르냐는 주장에 실리콘밸리는 격렬하게 반응했습니다. 반도체는 전략적 가치가 있는 반면에 감자는 그렇지 않으니 자신들이 만드는 칩은 정부의 도움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주장이었습니다.(225쪽)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그럴 만도 했습니다. 천하의 인텔도 일본의 반도체 공세에 못 견디고 D램 분야를 포기할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써서 워싱턴 정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더는 일본에 반도체 주도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본격화된 순간이었습니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을 본격화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대항마로 떠오를 가능성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의 출현을 반기고, 지원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반도체 신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은 어떻게 밀려났고 대만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이렇듯 오늘날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세계 전략과 반도체 기술을 군사가 아닌 민간 시장에서 소비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미국 기업들의 자본주의적 열망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소련이나 중국이 이걸 지켜보고만 있었을까요? 소련은 일찌감치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반도체 개발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소련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이 부족해서도 뒤떨어져서도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소련이 우주 개발에서 미국을 앞서 나갈 정도로 우수한 물리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소련에는 2000년 결국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잭 킬비(당시 집적회로의 공동 발명자인 밥 노이스는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와 공동 수상한 조레스 알페로프(Zhores Alferov)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련이 왜 반도체 개발에는 실패했을까요? 그것도 최고위층에서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반도체를 “베끼라”고까지 하며 독려했음에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소련이 물량은 뽑아낼 수 있을지언정 품질이나 순도에서는 미국과 현격한 격차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장비조차 제대로 구비할 수 없었습니다.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가 반도체를 비롯한 고급 기술이 소련으로 수출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8장) 결국 소련의 반도체 설비는 상대적으로 덜 섬세한 장비와 덜 순수한 재료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정상 작동하는 칩의 생산량이 적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파이는요? 스파이 행위로 쇼킨과 엔지니어들이 얻을 수 있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칩을 훔쳐 왔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습니다. 케이크를 훔쳐 온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도체라는 케이크를 굽는 레시피는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해져 있었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쇼클리의 수업을 들은 교환학생이라면 똑똑한 물리학자가 될 수는 있었겠지만, 어떤 화학 물질을 어떤 온도로 맞춰야 하는지, 포토레지스트를 얼마나 오래 빛에 노출시켜야 하는지 등과 같은 지식은 앤디 그로브나 메리 앤 포터 같은 엔지니어들의 것이었습니다. 칩 제작은 모든 단계마다 특별한 지식이 필요했고, 그 지식은 같은 회사 안에서도 다른 공정에 관여하는 사람이면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런 유형의 노하우는 많은 경우 문서로도 정리되지 않습니다. 소련 스파이들이 이미 반도체 업계 내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회사에 침투해 있었지만 반도체 생산에는 더 많은 디테일과 지식이 필요했고, 그런 건 가장 탁월한 스파이조차 훔쳐 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111-112쪽) 그렇다면 중국은 어땠을까요? 사실 중국도 소련과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훨씬 더 극단적인 형태였습니다. 중국의 경우 1950년대 초 베이징에 반도체 소자를 과학 연구 우선순위로 확정 짓고, 세계 각국에서 관련 전문가를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1960년에 최초의 반도체 연구 기관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1965년에는 실제로 중국산 반도체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는 밥 노이스와 잭 킬비가 반도체를 개발한 지 5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966년에 일어난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이 모든 것을 망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중국은 반도체와 관련 ‘잃어버린 2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반면 그 사이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기술 위에서 첨단 제조업을 수행하는 나라가 되기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갔습니다.(301-303쪽) 중국의 마오쩌둥이 한국에 엄청난 기회를 마련해 준 셈입니다. 반면에 또 하나의 중국 대만은 전혀 다른 스탠스를 취했다. 그들은 다음에서 인용에서 재연되듯이 거의 모든 것을 내던지다시피 하면서 반도체에 매달렸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미국, 한국, 대만을 반도체 산업의 3축 중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1985년 리궈딩은 대만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자리에 모리스 창을 앉혔다. 리궈딩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만 반도체 산업을 원합니다. 말해 보시오.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중략) 대만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전권을 맡기고 백지수표를 써주겠다는 제안을 했을 때, 모리스 창의 마음이 끌렸습니다. 54세의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창이 대만으로 “돌아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전까지 비즈니스 목적으로 대만을 단 한 번 방문했을 뿐입니다.(289-292쪽)

미국은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가 흔히 품는 상상이 있습니다. 미국 정부, 특히 국방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모든 기술 발전을 쥐락펴락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1970년대 정도까지만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이익 확대를 위해 반도체를 저렴한 가격에 생산하여 전자 기술 혁명을 민간 시장에 뿌리면서 미국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켜 나갔습니다. 실제로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이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결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일 뿐입니다. 더 싼 가격으로 반도체를 생산할 것, 더 많은 이들에게 판매할 것, 더 큰 수요를 이끌어 낼 것. 이를 위해 달려가는 자본주의의 힘은 거침없이 세계화를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이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원이었고, 일본이 너무 커 가는 것을 경계한 미국의 정책 덕분에 한국과 대만이 일본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중국이 끼어드는 것을, 보다 정확하게는 과거의 일본처럼 아니 일본보다 더 위협적으로 변하는 것을 미국이 결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칩 워'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독자 스스로 그러한 답을 얻어내도록 충분한 정보와 맥락을 제공합니다. '칩 워'는 미국 학계의 기린아가 미국 정계와 산업계의 ‘인사이더’들을 취재하고 연구하여 내놓은 일종의 천기누설인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반도체는 미국의 핵 기지에서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두뇌가 되었습니다. 반도체의 힘으로 유도되는 미사일은 베트남전에서 첫선을 보이고, 걸프전에서 그 압도적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중동에서 군사력으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꼽히던 이라크의 정예 군대가,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날아와 꽂히는 미국의 미사일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걸프전의 승리와 소련의 해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습니다. 미국의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소련의 엘리트들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의지를 상실했습니다. 1991년 초, 걸프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991년 말, 냉전 역시 미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소련의 물량 공세 앞에서 미국이 택한 ‘상쇄 전략’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물론 반도체가 영원히 미국‘만’의 힘으로 남아있지는 않았습니다. 고도화된 첨단 반도체에 힘입어 국방 전략을 짠다는 것은, 그 고도화된 반도체에 의존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고 점점 복잡해지면서 미국이 반도체에 대한 전적인 통제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아마 미국이 일본을 본격적으로 견제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기술, 군사, 경제. 반도체라는 하나의 상품 안에는 이렇듯 많은 맥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칩 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촉망받는 신예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로서 반도체 산업의 각 분야를 치열하게 취재하고 학습하여 이 세 요소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말하자면 3차원 회로로 구성되어 있는 최첨단 3나노 반도체와도 같은 책입니다.

 

추천평

-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 전 회장. 『초격차』 저자)

미중 관계의 악화로 반도체 전쟁은 격화되고 한국도 피할 수 없는 참여자가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이 확보한 세계 최고의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 기술은 우리나라 경제와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을 준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개발자, 기업가, 특히 정책을 수립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 송창록 (SK하이닉스 부사장)

사업가는 변화가 극심한 시기에 도약을 위한 기회를 포착한다고 합니다.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전략과 사업 전략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은 미래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이 책은 바로 이 시기에 참고할 만한 좋은 레퍼런스입니다. 60년을 이어온 한국 반도체 산업의 빛나는 이름이 불안정한 지정학적-지경학적-지리학적 환경에서도 지속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한국 반도체 산업의 일익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관련 신간을 꼬박꼬박 읽어 보았지만 '칩 워'처럼 반도체의 탄생부터 오늘날의 치열한 혈전까지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책은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대단한’ 책입니다.

-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바야흐로 반도체 전쟁의 시대입니다. 이 책은 패권 경쟁의 기저에 깔린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을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흥미롭고 다이내믹하게 풀어낸 역작입니다. 반도체에 관심이 많은 투자자는 물론이고 정치인과 기업인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다양한 인사이트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 뉴욕타임스

이 책은 논픽션 스릴러다. 영화 [차이나 신드롬]이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긴박감 넘친다. 마치 무어의 법칙처럼 펄떡이며 심장을 뛰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폭넓은 대중에게 실리콘 시대를 이해시킬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실리콘 시대가 원자력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드라마와 중요성을 지녔음을 가르쳐 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크리스 밀러의 '칩 워'일 것입니다.

- 뉴요커

1950년대 미국에서 반도체 칩이 발명된 후 국제 공급망이 동아시아에 집중되기까지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반도체 산업의 조종간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서 세계 경제와 정치 질서마저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섬뜩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 줍니다.

- 로랜스 H. 섬머스 (제71대 미국 재무장관, 하버드대학교 찰스 W. 엘리엇 유니버시티 교수)

반도체의 역사는 21세기의 역사와도 같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앞으로 오래도록 걸어가야 할 길의 역사를 제시하는 최고의 연대기입니다.